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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서/화장실 기행

인사동에서 화장실 볼일 급할 때



-비와 바람이 오락가락하는 25일 해질녘 인사동, 역시 사람이 많다. 어둑어둑..불이 하나씩 늘어가고 있다.

인사동에서 알아두면 도움되는 곳
-화장실개방/커피나 국산차 무료/음료 무료/작은 음악회나 콘서트-'대성 셀틱' 사옥


지난 여름, 그러니까 베이징 올림픽 야구 금메달을 따던 날 '대성 셀틱' 사옥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찾아 커피나 율무차를 공짜로 마시고 팝콘을 얻기위해 줄지어 서 있었다. 화장실에는 사람들이 계속 들락날락~ 여름날의 잦은 화장실 볼 일을 해결하고 있었다. 일행이 화장실에 간 사이, 커피 한잔을 얻은 나는 회사 측 중간 관리자 정도로 추측되는 사람에게 물었다.

"이렇게 화장실을 개방하고 공짜 커피며 물을 제공하는 이유가 뭐죠?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면 좋은 의도와 달리 불미스런 일도 있을 수 있는데...대성 셀틱이 돈을 많이 버나보죠(마음에 없는 소리~) 홍보 차원인가요?"

"인사동에 참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데, 구경할 곳은 많아도 쉴곳은 그다지 많지 않아요. 하다못해 화장실을 가려고 해도 불편하고요. 특히 어린아이들을 동반했을 경우에는 더더욱 화장실 문제로 곤란할 때가 많아요. 그래서 이곳에 오래전에 둥지를 튼 우리가 이 넓은 마당을 사람들에게 제공하자. 사람들은 쉴곳이 마땅하지 않은데 이 넓은 마당을 문 걸어 잠그기에는 미안하다. 그래서 몇년동안 토요일과 일요일에 이렇게 사옥을 개방하고 커피나 음료를 제공하고 있는 거랍니다.

전시회, 모임, 친구들과의 만남 등으로 인사동에는 자주 들르는 편입니다. 지방에 사는 친구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곳이 인사동과 남대문시장. 어제(25일)는 딸의 생일이었습니다. 지난해까지는 친구들과의 생일파티를 강조했었는데, 이젠 아이도 많이 컸나봅니다. 엊그제 제가 기사로 썼던 <김병철 조각극>(관훈갤러리/28일까지) 도록을 보더니 직접 찾아가 눈으로 꼭 보고 싶다는 겁니다.

원래는 12시 이전에 나가 경복궁 향원지의 가을을 만끽하고 저녁 무렵에나 인사동에 들르기로 했지만, 하루종일 비와 바람이 어지럽게 교차하는지라 경복궁의 가을은 생략, 집에서 느즈막히 출발해 오후 4시쯤에야 인사동에 도착했습니다. 김병철 조각극이 열리고 있는 관훈 갤러리 신관에서 30분. 박상원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관훈갤러리 별관에서 30분. 관훈갤러리에서 나와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참 많은 인사동 사람들 틈에 끼어 한참을 구경을 했습니다. 인사동 초입 빵집에서 빵을 하나사서 둘이 뜯어먹었기 때문에 아직 배는 고프지 않았거든요.

"엄마, 다음에는 쌈지길에 가볼까? 또 재미있는 전시회 같은 것 없을까? 그런데 화장실에 가고 싶네. 엄마 나 화장실!"

거리를 가다가 화장실이 급하면 참 난감하죠? 거기다가 어린아이가 화장실이 급하다고 하면 더더욱 난감...볼썽 사납게 길거리에서 바지춤을 내라고 쉬를 시킬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조건 참으라고 할 수도 없는 일...어떤 건물로 가볼까? 화장실 찾아 마음까지 공연히 조급해지기 일쑤죠?

"나 따라와 봐! 엄만 모르는 곳 없이 다 알쥐! 나만 믿으라고!" 이렇게 뻐기면서, 자신만만하게 아이를 데리고 간 곳은  대성 셀틱 사옥입니다.



-이 로보트가 서있는 곳이 대성셀틱 사옥이랍니다. 3호선 지하철 6번 출구쪽으로 인사동길 접어들어 조금만 더 올라가면
오른쪽에 있는...인사동에 자주 가시는 분들에겐 무척 낯이 익죠?



-저기 왼쪽의 화장실 표시 화살표가 보이나요?



-수많은 사람들이 들락날락해도 늘 깨끗한 화장실과 복도. 회사측의 세심한 배려와 마음씀 없이는 불가능하겠죠?
멀리에 있는 생수통은 개봉하지 않은 것, 앞에 있는 것은 이곳을 찾은 시민들에게 무료로 제공, 빈통이랍니다.



-인사동 6번 출구 쪽에 간이 화장실이 있긴 있습니다만, 큰 대로변에 있는 그 화장실 이용하기 사실 좀 뻘쭘합니다. 제가 알기로 인사동 상인들이 순수하게 제공하는 공중 화장실은 없습니다. 어떤 집은 여전히 열쇠를 들고 화장실에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때문에 인사동에서 소매를 하지 않음에도 이처럼 화장실을 제공하는 대성 셀틱 측의 배려가 반갑고 고맙다는...


아이가 화장실에 가고 조금전에 얻은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서 있었습니다. 그 잠깐 사이에 참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렸습니다. 여름에는 이곳 광장을 찾는 사람들이 더 많기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데 그때도 화장실은 물론 복도도 늘 깨끗했습니다. 화장실이 급할 때나 찻집에 들어가기 애매하거나 주머니가 가벼워 공짜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 목이 마르거나 잠시 쉬어가고 싶을 때 몇 번 들렀었는데 그때마다 기분이 참 좋았었습니다.

뭐랄까. 꺼뜩하면 정치계 아무개에게 뇌물을 주고 청탁을 했느니, 탈세를 했느니...이런 뉴스들을 진저리나도록 듣는, 자신들의 물건을 팔아주는 소비자들은 안중에도 없는, 오로지 이윤 남기기에만 혈안인 기업에 대한 실망...(우리나라 대다수 기업에 대한 막연한 이 불신...저만 그런가요?)....와중에 그래도 자신들을 있게 한 소비자들에게 이윤의 일부를 돌리고자 하는 대성 셀틱 측의 그 마음씀이 느껴졌다고 할까요?

혹시 어떤 분들은 '이까짓것!'할지도 모르지만, 글쎄 정말 그까짓것에 불과한 마음씀이며 배려일까요? 전 결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비와 바람이 오락가락 하는 어제(25일) 이와같은 시설물을 설치. 여름이나 날이 좋은 날보다 사람은 월등하게 적었습니다. 화면에서는 공연방송이 계속 나오고 있었고, 커피 한잔을 마시며, 혹은 눈을 감고 노래를 듣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평상시 블랙커피를 마시고 있는 나도 인스턴트 커피 한잔을 얻어 마셨습니다. 아이는 코코아를 마셨습니다. 그리고 뜨거운 물을 한 컵 더 따라 마셨습니다. 속이 참 따뜻해졌습니다.



-이 사진은, 베이징 올림픽-야구 금메달 따던 날의 모습이랍니다. 사진에는 담아지지 않았지만 (기억을 더듬어 보면) 이 날 대성 셀틱측에서 제공한 대형 텔레비젼은 5대 가량, 아주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면서 경기를 봤습니다. 아래는 아이들을 위해 설치한 전통놀이광장. 제기차기, 윷놀이 등...온가족이 윷놀이 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이날 광장을 찾는 사람들에게 경기를 보면서 먹을 수 있도록 커다란 팝콘 한봉지씩 제공했습니다. 이날 마침, 동생이 인사동에서 침장 관련 전시를 해서 관람하고 저녁 먹고 잠시 들렀었습니다. 동생 친구 중 누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길래 내가 데리고 간 곳이랍니다.



-대성 셀틱 사옥에서 만난 보일러 원리와 생산되는 물건들


-사람이 많을때는 온수통이 ㄱ자가 된답니다.사람수에 맞게 온수통이 늘어난다는...


-주황색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대성 셀틱 측의 사람들입니다. 제가 몇 번 가본 결과 늘 10여명 가량, 많게는 20명 가까이 있을 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르바이트 학생들로 보이지만 더러 나이가 어느정도는 있는, 중간 관리자 정도로 보이는 회사측 사람들도 자주 보인답니다. 어쨌건 몇 년 동안 몇 번 가봤는데 언제나 이분들 참 친절했습니다.


-며칠전 남편과 함께 차를 마신 인사동의 별다방 미스리


커피와 율무차와 코코아, 물값이며 컵 등...인건비와 재료비만도 그리 적은 액수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게다가 몇 년 동안 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사옥을 개방한만큼 불미스러운 일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직원들도 교대로 근무해야 한다던지,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면서 오는 무질서와 오염문제도 신경써야 하는....직접 가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절대 '그까짓거!'이 아니란 겁니다.

제가 공짜를 좋아하기 때문에 대성 셀틱 측의 이런 배려가 고마운 것은 절대 아니랍니다. 이렇게 인사동의 찻집에서 커피나 전통차를 마실 때도 더러 있거든요. 사실 대성 셀틱 측의 공짜 커피는 인스턴트 커피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리 반가운 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싼 커피 한 잔이 누군가에게는 커다란 위안도 될 수 있다는 것...그리고 사소한 듯 하나 실은 제일 중요한 문제를 손해 감수하면서 해결해 준다는 것.



출 처 : blog.ohmynews.com/maum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