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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서/화장실 기행

런던의화장실

      -런던의 화장실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비가내리는 런던거리는 그야말로 런던답다. 맑고 화창한 런던보다는 비가오는 런던이 웬지 더 어울린다. 히드로 공항에서 내려 오스틴 택시를 탔다.
1953년부터 굴러 다녔다던가. 뉴욕의 택시가 '옐로우 캡' 즉 노란 색깔이라면 런던의 택시 '오스틴'은 검은색이다. 운전수와 승객 사이에 유리칸막이가 쳐져있고, 승객석은 짐까지 실을 수 있도록 넓다란 영국의 택시인 오스틴은 육중하고 둔중하며 너무나 고전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보수적이고, 고답적이고, 실용적인 영국인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낸 듯한 것이 런던의 택시인 오스틴이다.

MBC다큐멘터리작가
홍하상


오스틴을 타면 런던에 왔다는 실감이 난다. 오스틴을 타고 하이드파크의 웨스트게이트 근처에 있는 호텔 '하이드 파크 온 플라자'에 투숙한다.
'하이드 파크 온 플라자' 호텔 방에 짐을 풀고, 방에 서비스되어 있는 트와이닝 홍차를 영국제본 차이나 잔에 타서 한잔 마신다.
우리나라에서는 립튼 홍차를 많이 마시지만 런던에서는 단연 트와이닝 홍차를 많이 마신다. 트와이닝 홍차를 마시면 또 한번 영국에 왔다는 실감이 난다.
홍차를 한잔 마시고 시내 구경을 나가려는데 그만 오줌이 마렵다. 호텔 지하1층에 있는 공중화장실에 들렀다. 일류 호텔인데, 화장실은 간단하다. 거추장스러운 것은 다 빼고 실용성만 100% 살렸다. 이네들의 국민성이다.
빅 벤을 마라다 보면서 템즈 강변을 걸어본다. 빨간 벽돌로 지어진 반 지하1층, 지상2층의 수백년된 주택들, 좁다랗고 꼬불꼬불한 도심의 거리, 그 사이를 스트라이프 넥타이를 매고 반듯하게 다려진 양복을 입고 활보하고 있는 젠틀맨들.
런던거리는 죠나단 스위프트의 소설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소인국 같다.


런던에 오면 기네스 흑맥주를 한잔 마셔야 한다. 1664년부터 생산되어 판매되고 있는 아일랜드산 기네스 맥주야말로 영국인의 삶이다. 팝(PUB)에 들른다. 노인들 몇이 스탠드에 서서 기네스 맥주 한잔을 시켜놓고 담소를 하고 있다. 영국은 팝(PUB)의 나라. 그네들은 팝에 모여 대화하고 토론하다가 의회정치를 만들고 민주주의를 만들었다.
기네스 하프 파인트 한잔을 마신다. 쌉살한 맥주맛이 상쾌하다. 한잔을 주욱 들이키고 나면 그 다음은... 화장실에 가야한다. '거시기'가 배꼽에 닿을 정도로 변기의 위치가 높은 팝의 화장실. '우리는 이렇게 덩치가 크단말야.' 마치 그렇게 으스대듯이 만든 것 같은 높다란 변기. 나같이 키가 작은 사람은 거시기가 변기 끝에 걸릴 지경이어서 살짝 발을 들고 소변을 보아야 한다.


거의 대부분 흰색변기에 치장이라곤 없이 그야말로 100% 실용성과 청결성만을 갖춘 런던 대중식당의 화장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통일된 것이 이 나라 화장실의 특징 이라면 특징이다.
자, 팝에서 나와서 어디로 갈 것인가.
그 다음은 대영박물관이다. 요즘 대영박물관에는 한국어로 된 안내책자가 있다. 전세계 8개국어로 만들어 그걸 판매하는데, 한국어로 된 책자가 있는 건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을 보는 것 같아 기분좋다.
요즘 한여름에 대영박물관에 가면 우리 한국 사람들을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다. 대개는 팩키지 관광이긴 하지만 모두들 열심히 배우러 다닌다.
매일 2만명 이상이 관람한다는 대영박물관.
입장료가 공짜다 보니, 사시사철 대영박물관 안은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이다. 대리석 덩어리, 로제타 스톤과 오랜만에 나들이를 나왔다는 클레오파트라의 미이라를 보고, 작은스핑크스들을 보다가 한국관으로 간다.


 

 


97년 가을 대영박물관에 드디어 한국관이 생겼다. 그전까지 대영박물관에는 한국관이 없었다. 5천년 문화민족이니 뭐니 했지만, 한국관이 없었을 때 대영박물관에 가면 참으로 창피하고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한국관이 생긴 건 삼성그룹 때문이다. 이 점은 칭찬받아야 한다. 그러나 아직 진열품의 질을 좀 더 높일 필요가 있다.
대영박물관의 일본관실은 우리보다는 규모가 크다. 그 진열실의 입구에는 일본이 자랑하는 도자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히라도 도자기, 이마리 도자기, 가라쯔 도자기 들이다. 대개 16008년 이후의 작품들이고 상당한 명품들이다. 그런데 이들 도자기들은 알고보면 모조리 임진왜란때 일본으로 끌려간 우리 도공들의 작품이거나, 그들의 1대나 2대 자손들의 작품이다. 일본이 자랑하는 일본의 5대 도요, 즉 이마리, 아리타, 가라쯔, 사쓰마, 하기 도자기는 모조리 조선에서 건너간 도공들이 만들어준 것들이다.
대영 발물관을 두시간 쯤 돌아보고 나면 그 다음은...역시 화장실. 소변을 보아야 하는 것이다. 하루 2만명이 드나드는 대영박물관의 화장실은 어떨까.
검소하고 실용적이며, 편리성이 최우선인 화장실이 이곳의 화장실이다. 그리고 청결도는? 물을 24시간 흐르게 하곤 있지만 전 세계에서 수많은 관광객이 모이다 보니 청결도의 점수는 80점. 오줌거품과 화장실 바닥에 물이 질척하게 적셔져 있기 때문이다.
대영박물관이 세계제일의 박물관이라면, 화장실 부분은 조금 반성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