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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은글) [명화그림비교] 고흐의 명화그림 VS 고갱의 명화그림 - 아를에서 그린 명화그림들


우선 고흐가 그린 명화그림 자화상 두 점을 구경해보자.





 

1889년초에 그려진 고흐, 자신의 자화상이다.

1888년 12월 23일 고갱과의 격렬한 싸움 끝에 고흐는 귀를 상했다.

그리고 이틀 후 동생인 테오가 아를에 도착해 다친 고흐를 간호했다.

그 곁에 고갱이 함께 있었는지 어땠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아무튼, 그 격렬한 분노가 가시고 난 뒤 귀가 잘린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고흐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해진다.



귀를 상하고 난 뒤 거울을 보는
(자기가 자신을 모습을 그리려면 거울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고흐의 모습은 다른 자화상들과 사뭇 많은 차이가 난다.


 


고흐가 귀를 자른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고갱이라는데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자의든.. 타의든..



고갱과 고흐와 관련된 포스트를 작성하려 자료를 찾아보니..

재미있는 신문기사를 발견했다.



"독일예술사학자들, 고갱이 고흐의 귀를 잘랐다고 주장"



기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인상파 천재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귀를 잘랐던 사람은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예술적 동지였던 고갱이었다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모으고 있다.


지금까지 반 고흐는 심각한 정신분열증에 시달렸으며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전인 1868년 자신의 귀를 면도칼로 직접 자르고 '붕대를 감은 자화상'(Bandaged Eat)을 그린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하지만 한스 카우프만 함부르크 대학 미술사학과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들은 기존 주장들을 뒤엎고 "반고흐의 귀를 자른 것은 그의 친구였던 폴 고갱(1848~1903)이었으며 반 고흐는 고갱을 감싸기 위해 죽기 전까지 이 사실을 비밀에 부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한스카우프만과 리타 빌데간스의 공동 저자는 최근 발간한 저서에서도 "두 사람이 프랑스 아를에서 함께 살던 중 고갱에게 떠나겠다고 선언하자 반 고흐가 쫒아 나왔고 둘은 격렬한 언쟁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과정에서 훌륭한 검술을 갖고 있던 고갱이 자기 방어 때문에 혹은 화가 나서 칼을 휘둘렀고 반 고흐의 귓볼을 잘랐다"고 설명했다.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고갱이 귀 절단 사건 직후 사라진 점과 고갱이 그 후 아를에 남겨놓은 펜싱 마스크와 장갑을 되찾으려고 했던 것에 반해 펜싱 검은 찾지 않았던 점, 그리고 반 고흐가 생전 남동생 테오(Theo)와 주고 받은 서신의 내용 등을 들고 있다.


서신에서 반 고흐는 "누구도 내가 범죄를 저지르는 모습을 본 적이 없고 그 어떤 것도 내가 진실을 은폐하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또 반 고흐는 생전 고갱을 향한 마지막 언급에서 "너는 말이 없구나. 나 역시 그럴 것이다 (You are quiet, I will be, too)"고 남긴 점을 두고 두 사람 간에 "침묵의 서약"을 했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다고 연구진들은 덧붙였다.


이밖에도 연구진들은 반 고흐가 붕대 감은 귀를 그린 스케치 중 하나에서 '발작(ictus)'이라고 써놓은 점에 주목하고 펜싱에서 이 단어의 라틴 용어가 '치다'로 쓰인다고 지적했다.


한편 대다수의 미술 역사학자들은 '반 고흐의 귀 절단' 사건을 정확하게 설명할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고 반박하지만 한스 카우프만이 이끄는 연구진은 자신들의 해석이 정황상 가장 논리적이라고 맞서고 있다.



기사대로 보면 고갱...

파렴치한도 그런 파렴치한이 따로 없다.

한편으로는 그런 놈을 친구로 둘까 무섭다.



그러면서 마구 샘솟는 궁금증

고갱과 고흐 두 사람을 붙잡아다 놓고 물어보고 싶다.



"니들 도대체 왜 싸웠냐?"



그게 1888년 고갱과 고흐의 관계를 마구 파보는 계기가 되었다.


두 사람이 아를의 노란집에 머물게 된 것은 1888년 가을이라고 한다.

테오의 경제적 후원을 바탕으로 아를에 터를 잡은 고흐가 자신의 지인들에게
함께 공동작업을 하자고 편지를 보냈고,

고갱이 얼마 후, 아를로 오게 된다.


고갱은 당시 부인이 아이들을 데리고 별거를 선언한 직후였고,

고흐는 모두가 아는대로 그다지 안정적인 심리상태는 아니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병적으로 예민해진 고흐와 잠재적인 분노를 내재하고 있는 고갱...

어떤 방법으로든 사고가 터지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자의든.. 타의든..


두 사람은 사사건건 작품을 두고 부딪히게 된다.


 

 

고갱이 그린 밤의 카페 - 어제 소개 되었던 고흐의 <한밤의 테라스>에 나왔던 카페 맞다.

그림 속 여주인공.. 그 밤의 카페 마담언니 되시는 지누부인이다.


 

 

고갱의 그림에 나오는 지누부인, 그흐도 그렸더랬다.


하지만 두 사람이 표현하는 지누부인은 느낌도 인상도 다르다.

고갱의 지누부인이 능수능란하고 농염해 보이는 중년의 팜프파탈이라면,

고흐가 그린 지누부인은 사색적이고 성실해 보인다.


 

 

고흐가 그린 우체부 롤랭씨의 부인이다.

그 수염 더부룩한 그 포스트맨 그림의 마나님 되시겠다.



 

뿌윰하긴 하지만.. 이건 고갱이 그린 롤랭부인이다.

아를 그 쪼고만 동네에서 보는 게 맨 그거지 싶다.

이번에도 한 여인을 놓고 두 사람이 그린 그림은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편파적이고 싶지는 않지만) 고갱이 그린 롤랭마나님은

그냥 강렬한 느낌의 색채로 이루어진 중년 아지매일 뿐이다.


그러나 고흐가 그린 롤랭마나님은 눈이 뭔가를 말하는 것 같다.
눈속에 있는 이야기까지도 함께 그림으로 그렸다는 소리다.



아마 고갱을 좋아하는 양반들이 보셨다며 분노할 소리겠지만.. 눈은 사람마다 다르다.

설마 내 귀까지 자르겠는가?



이쯤하면 두 사람 왜 싸웠는지 짐작이 실실 가기 시작한다.


고흐가 그린 그림 두 점 더 보기로 하자.



 

 

신문기사 하나로 고갱은 완전히 내 눈밖에 났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아래것은 고흐의 작업의자, 그리고 위에 우아한 장식의자는 고갱의 작업의자 되시겠다.

인상주의니 사실적인 것에 집착하지 말고 보자.. 두 그림의 인상!! 인상만 보자.

오로지 고흐만의 성격이긴 하지만 두 양반의 성격 나온다.

고급스러운 화려함과 원시성을 함께 가진 음흉한(?) 고갱

담백하면서 소박하고 순수한 고흐..



옛날 양반들이라.. 몰랐었나? 아니면 두 양반 다 늦되는 양반들이런가..



아마도 사람마다 생각이 다 다르다는 것을 몰랐나 보다.

개성이 다르면 느끼는 것도 다른법..

그림도 잘 그렸으면서 정작 현실 응용은 되지 않았던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다.



이렇게 다른 감성의 소유자들.. 각자의 그림을 놓고 이게 맞느니.. 저게 맞느니..
치고 박다가 피를 보고 말았던 것이다.

고흐를 돌게 만든 고갱의 그림 한 점 구경해 보자.


 


해바라기를 그리는 고흐다.

일단 해바라기를 저렇게 그렸구나.. 한다.

그리고.. 두울.. 유명한 화가들은 그림으로 친구랑 배틀도 하나보다 한다.

고갱은 저 그림으로 고흐를 놀렸단다.



그림 그리면서 꾸벅꾸벅 졸았던게 뭐 창피한 일이라고..

아 그림 보면서 고흐.. 마구 마구 뛰었더랜다.

결국 칼부림이 낫겠지 싶다.



정말로 고흐가 자기 귀를 자기가 잘랐든.. 고갱이 펜싱칼로 잘랐든..

중요한 건.. 두 양반다 옳다는 말 하고 싶다.

(내가 황희정승도 아니면서..)

그러니.. 저승에서는 그림때문에 싸우시는 일 없기를..



출처 : http://iaanart.tistory.com/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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