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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서/화장실 이야기

요강을 보는 심미안

일본의 에도 시대(1596~1868), 한 유명한 다도(茶道) 사범이 여관에 머무르게 되었다.
여관에 들자마자 그의 눈에 번쩍 띄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요강이었다. 이 사람은 여관 주인에게 요강을 깨끗이 씻게 한 다음 감상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은 요강으로 쓰이기에는 너무 훌륭한 명품이다. 차라리 꽃병으로 쓰면 일품이겠다'고 생각했다.

다도를 가르치는 사람답게 고귀한 생각만을 품고 있었던 탓일 게다.
다도 사범은 그 고귀한(?) 요강을 계속해서 지그시 바라보다가 이윽고 그 요강을 샀다. 그러나 나서는 뜻밖에도 "이것을 부수어 버리시오"라고 했다. 그 요강은 놀란 여관 주인의 눈앞에서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심부름하는 아이가 그 까닭을 묻자, 사범은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 요강은 틀림없이 멋진 물건이다. 도기를 알아볼 만한 눈이 있는 사람이 시장에 내다 팔면 큰 돈을 받을 수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떤 사람은 이것이 요강인지도 모른 채 거액으로 산 비싼 도기라고 하여 귀중하게 모실 것이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꼴을 보지 않으려고 깨 버린 것이다." 실제로 에도 시대에 질이 좋고, 값비싼 화병이라 해도 좋을 만큼 멋진 요강들이 있었다.

또 이런 이야기도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지배할 당시인 1592~96년, 변방에 살던 어느 부자 상인이 필리핀에 건너가서 진귀한 물건들을 사다가 도요토미에게 바쳤다. 그때 진상된 물건들 중에는 필리핀 도기는 다도를 하는 사람들이 애호하였던 바, 무척이나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우스운 사실은 이 필리핀 도기가 실제로는 필리핀의 것도 아니요, 차를 담는 것도 아닌 한낱 물항아리에 불과했다는 물항아리에 불과했다는 사실, 그 뿐만 아니라 이 필리핀 도기는 원래 서양 사람들이 소변을 보는 용기로 쓰던 것이었다고 한다. 서양 사람들의 소변 용기가 일본에서는 진귀하고도 값비싼 다기가 되었으니...원래 다도에서는 하찮은 요도로 쓰이는 물건이라도 우아하고 멋있다고 인정되면 다기로 사용했다고 한다.

이런 다도 정신 때문에 소변 용기를 다기로 쓰는 것이 가능했을는지도 모른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도공들이 대규모로 납치된 것도 다도에 쓰이는 다기를 제작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다. 실제로 일본의 국보 중에는 조선의 일반 백성들이 쓰던 밥그릇도 있으며, 그 밥그릇에 대한 논문이나 예찬문이 상당수 있다는 것도 재미있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