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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서/화장실 문화컨텐츠

우리나라 화장실 문화의 결정판~ '병산서원 통시' & '선암사 해우소'에서 볼 일 보기...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쓰는 위의 말이 요즈음 방송의 자막에 나올때면 틀림없이 '똥'자는 X자로 표시될게 분명하다. 또 아무리 험한 입담으로 소문난 진행자들도 갖은 야스럽고 속된 말을 직접적으로, 혹은 은근히 돌려가며 하면서도 '똥'자 만큼은 기필코 피해서 말할 듯 싶다.

 

신체가 살아있는 한 하루라도 빼먹을 수 없는... 배설...

하여 우리 주거공간에서  빼놓으면 결코 안될 필수불가결한 공간... 화장실...

 

모두가 매일 그곳에서 뭔가를 하면서도,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 그곳...

 

그러나 그곳이 얼마나 중요한 공간이면  '위생은 생명이다 , 위생은 존엄이다, 위생은 미래다'라는 비전을 내걸며 세계화장실협회라는 곳이 창립되었겠는가? 그리고 세계화장실협회의 창립을 주도한 국가가 우리나라이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깔끔을 유난히도 떨어대는 유럽의 사람들이지만, 그 화려하기 그지없는 베르사이유궁전에 화장실이 없어 숙녀들에게는 궁전의 한구석 넓은 숲이 제공되었다는 우스운 사실과 넘쳐나는 오물때문에 나막신이 생겨나게 되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선진 유럽은 화장실 문화가 뒤쳐져 있었다.

유럽여행을 하며 가장 생소한 문화중 하나가 공중화장실이 적다는 점, 그리고 상점을 이용하지 않고 화장실만 사용할 땐 화장실 사용료를 내야한다는 것을 들 수 있겠다. 이젠 많이도 청결해진 우리의 공중화장실과 화장실 사용에 대한 후덕한 인심은 젖혀놓도록 하자.

세계회장실협회라는 국제기구 창설을 주도하리만큼 우리의 화장실 문화는 근래에 발전한 것이 아니라 예로부터 선진적이었으니, 대표적인 예로 '병산서원의 통시'와 '선암사의 해우소'에서 직접 볼 일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병산서원의 통시

통시는 '뒤간'의 방언이다.

병산서원의 통시는 우선 그 기하학적 모양새부터가 독특하다.

벽돌과 흙으로 두툼이 쌓아올린 담높이의 벽은 빙빙 돌아가도록 유선형이며, 별다른 지붕을 얹지 않고 벽에만 짚을 얹어놓았다. 

건축사에서도 독특한 공간으로 남을 이 화장실 옆엔 오래된 베롱나무가 진분홍 꽃을 피우고 있고, 밑에는 봉선화가 예쁘게도 피어 있어 보기에도 아름다울 뿐더러, 저 멀리 푸른 낙동강이 흐르는 모습까지 보이니 화장실 자리치고는 상당히 호사스러운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

 

 

병산서원에는 화장실이 두개가 있는데, 사진속 저 젊잖게 기와를 얹어놓은 건물이 유생들(양반들)이 사용하던 화장실이고 기하학적 모양에 해학적인 맛마저 풍기는 화장실은 머슴들이 사용하던 통시였다. 건물모양에서도 차이가 느껴지듯, 양반들이 사용하는 화장실은 병산서원 담 내에 위치해 있고, 통시는 담 밖에 위치해 있다. 

젊잖은 양반용 화장실은 제껴두고, 저 재미있어 보이는 화장실로 들어가 볼일을 봐보자.

통시로 들어가는 중... 입구에서 처음으로 부닥친 문제점... "앗... 화장실에 문이 없구나... T.T" 

밖에서 큰 기침을 해보아도 안쪽에서 기척이 없으니... 안에 사람이 없는 모양이다... 하여 과감이 안으로 입실...

화장실에 깊은 구멍을 파놓은 전형적인 재래식 화장실이다...

하나 원형의 화장실은 넓어 답답하지 않았고, 지붕도 없어 통풍이 잘된 탓인지 냄새도 지독하지 않고 시원하기까지 하다.

게다가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할때 누구나 우려하는 '흔들리는 변기통 널판과 좁은 구멍'에 대한 불안감이 전혀 없다.

변기통 널판은 보시다시피 아주 튼튼하고 묵직한 고목나무로 되어 있어 흔들림없고 안정감 있었으며 변기구멍 또한 넓은 편이어서 정조준에 대한 부담감을 말끔히 해소해 준다.

그나저나... 볼일을 보기 위하여 엉덩이를 드러내기가 쬐매 그런 생각이 든다...

그 옛날 이 화장실을 늘상 사용하였던 이들은 밖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면 헛기침을 하여 안에 자신의 존재가 있음을 알렸거나 아니면 입구에 무언가 사람이 있음을 알리는 도구를 놓았겠지만... 그런 방법이 통하지 않을 지금이야 난감하기 그지 없는 일이었다. 

하여 생각해 낸 것이 '흥얼거림'이었다.

아... 내 어렸을 적... 화장실에서 노래를 불러대면 '똥싸면서 매화타령'한다고 어른들이 놀래대곤 했었는데... '똥싸면서 매화타령'이 이렇게 효용될 줄이야 누가 알았으리오...

어쩌면 '똥싸면서 매화타령'은 이 문없는 통시에서 나온 얘기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조마조마한 마음에서 노래를 부르긴 하였으나... 매화타령을 하다보니 긴장감도 풀리고 보는 일도 술술이다...

볼 일을 다 본 후 일어나 하늘을 바라보니, 지붕없는 통시라 병산서원의 위용있는 만대루와 푸르른 대나무가 참으로 시원해 보인다.

누군가 병산서원의 '통시'라는 명칭이 "통쾌하구나~ 시원하구나~"의 준말이라 하던데,

통시의 어원은 정말 그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유쾌, 상쾌, 통쾌"한 삼쾌(三快)의 화장실이었다.

 

 

 

선암사 해우소

화장실로서는 유일하게 문화재(자료214호)로 등록된 곳이고, 건축연도만 해도 300년이 넘는 곳이 이 선암사의 해우소이다.

一자형 건물에서 북측으로 출입용 맞배지붕을 내어 전체적으로는  T자형을 이루고 있는 건물이다.

보통 사람들은 사찰의 화장실을  해우소(解憂所)로 부르지만, 이는 근래에 와서 붙여진 이름이고 원래는 정랑(淨廊), 청측, 사진속의 화장실 입구에 써진 것처럼 뒤간이라고 불렀다 한다.

우선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물게 T자형 건물에 출입구쪽의 人자형 맞배지붕의 널판처리가 투박하면서도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고 있어 화장실 건물에는 어울리지 않게 '귀엽다'는 표현이 딱 어울릴 정도로 독특하고 아름다운 외양을 하고 있다.

 

 

건물의 연륜만큼 고풍스러운 이 선암사 해우소 안으로 들어가 보자.

우선 T자형 건물의 구조로 인하여 자연스럽게 왼쪽은 남자용 칸으로, 오른쪽은 여자용 칸으로 남녀사용이 구분되어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재래식 화장실로는 드문 사용자에 대한 배려다.

사방이 나무살로 이뤄진 벽은 참으로 과학적이다. 이 나무살로 이뤄진 벽은 우선 해우소의 지독한 냄새를 없애주는 환풍구 역할을 하고 있으며, 바깥의 직사광선을 피하게 해주면서도 나무살 사이로 빛이 들어와 화장실을 밝혀주는 조명역할까지 겸하고 있는 것. 

그럼 본격적으로 볼일을 보기 위하여 변기칸으로 이동~

 

우선 화장실 바닥의 튼튼하고도 촘촘한 칸살이 볼 일 볼 사람에게 안정감과 쾌적함을 준다.

그러나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가장 우려되는 점은 '볼 일 보다 튈 수도 있는 바닥의 오물'에 대한 두려움이다.

'월초하룻날 변을 보면 그 떨어지는 소리가 섣달그믐날 들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그 깊이가 가장 깊다는 선암사 화장실은 그 두려움을 완전히 해소하고도 남음이 있다. 우선 깊이도 깊이거니와 바닥엔 나무재와 짚을 깔아두었기 때문.

이 화장실의 똥들은 나무재와 짚과 같이 썩어 나중에 다시 생명을 잉태하는 거름으로 쓰일 것이다.

인공화학비료를 생산, 사용하여 비용은 비용대로 들이고 환경은 환경대로 교란할 뿐더러, 화장실에서 나오는 오물처리로 비용은 비용대로 들이고 환경오염은 오염대로 시키면서도 위생과 과학을 강조하는 현대에 생태학적인 좋은 본보기마저 되고 있는 곳이 선암사 화장실.

 

그러나 '똥싸기'의 공개적 표현이 금기시되는 현대의 생활이 몸에 벤 나에게 선암사 화장실은 딱 하나의 꺼려지는 점이 있었으니... 바로 낮은 화장실 칸막이.

칸막이가 되어 있기는 하나 그 높이가 낮아 어른키의 사람이 화장실에 들어서면 볼일 보는 사람과 눈이 딱 맞주칠 정도로 낮다는 점이다.

하나... 이 화장실에 들어서서 재래식 화장실의 냄새를 맡으면  변의를 참기란 쉽지가 않다.

아... 그러고 보니 방금 내가 한 말을 이해할 만한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학교의 화장실이나 단독주택의 화장실은 거의 재래식이었다.

하여 꼭 볼일을 볼 요량이 아니어도 볼일 볼 시간에 화장실에 딱 들어가 앉으면  재래식 화장실 특유의 냄새가 났고, 이 특유의 냄새를 맡으면 변의가 생겨 볼일을 규칙적으로 볼 수 있었던 것.

마치 파블로브의 개실험과 똑같은 효과라 할까?

실재로 나는 나의 집 화장실 변기가 좌변식으로 바뀌면서 한동안 변비기운을 느껴야만 했다.

최근에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 하는 볼일 보는 자세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재래식 화장실에서 볼일 보는 자세가 좌변기식 자세보다 변의의 욕구를 훨씬 자극하고 볼일을 보는데도 도움을 많이 준다 했는데, 나는 이 사실을 이미 몸으로 체득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 '고향의 냄새'를 맡았으니... 파블로브의 개처럼 선암사 해우소에 들어앉을 수밖에 없었던 것.

 

앉아보니 의외로 안락하다. 꿩이 포수와 만나면 고개를 숙여 제 머리만 감춘다는 말이 떠올랐다. '까짓것... 누가 들어오면 눈만 돌려 버리면 그만이지... 세상에 똥 안싸는 사람이 어디있어...'이렇게 생각하자 주위를 둘러볼 여유마저 생긴다.

그리고 이내 시한편이 눈에 들어온다.

[ 더러움 씻어내듯 번뇌도 씻자 / 이 마음 맑아지니 평화로움 뿐...

  한티끌 더러움도 없는 세상이 / 이 생을 살아가는 한가지 소원...  ]

뱃속의 거북한 느낌을 통쾌히 배설하면서 읽는 시한편에 마음까지 맑아진다...

 

시원한 배설과 평화로운 명상의 시간 후, 화장실에 나오니... 해우소 입구에 깨끝한 물이 흐르는 물확이 눈에 띈다.

아... 볼 일 보고 난 후 손을 씻으라는 물확이렷다...

건물의 아름다움, 과학적인 설계와 생태학적 고려, 볼일 보는 즐거움, 끝마무리까지 확실한 애프터서비스까지... 선암사 해우소는 정말이지 우리 화장실 문화의 결정판이라는 생각이 든다.

 

흔히들 옛것은 고루하다 생각하지만... 병산서원 통시와 선암사 해우소를 보라...

옛사람들은 옛사람들 나름대로의 현명함을 지니고 있었고, 오히려 인간 존엄적이었고, 재미가 있었고, 낭만이 있었고, 사색이 있었고 자연주의적이었다.

 

'병산서원 통시'와 '선암사 해우소'는 애써 멀리 여행까지 해가면서도 한번 볼 일을 봐볼만한 가치있는 소중한 우리의 문화재이자 화장실문화의 고향같은 곳이다.

출처 : [직접 서술] 블로그 집필 - 그래도 걸음은 멈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