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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서/화장실 이야기

화장실역사

Prologue

 

한동안 외국 관광객들에게 한국 방문에 대한 가장 나쁜 기억 중에 하나를 물으면 한결같이 "불결한 화장실"을 꼽았지만, 새 천년에 들어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달라진 "화장실 문화"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많이 개선되고 있는「화장실 문화」에 대한 직업적인 궁금증이 생기게 된다. 사용자들은 동양식(와변기)과 서양식(좌변기) 중에서 어떤 변기를 선호할까?

 

 

 

찬란한 변기의 역사


지금은 일반화된 수세식 변기는 천연변기와 인공변기로 구분되며, 천연 수세식의 경우 지금으로부터 4000년 전에 인도의 인더스 강변 모헨조다로 유적지에서 유물이 발굴되고 로마제국에서 이용되었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오래되었다

인공 수세식 변기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시대에 여왕의 총애를 얻기 위해 존 헤링턴 이 고안해낸 것이 최초이다. 


 

악취는 물러가라!


수세식 변기로 세계 최초 특허를 받은 것은 1775년 영국의 수학자 알렉산더 커밍으로 여러 가지 면에서 헤링턴을 계승했지만 '밑으로부터, 올라오는 악취를 고여있는 물이 차단시키는 장치'인「취판」이 부착되어 이후 도시의 상·하수도 보급과 더불어 전 세계적으로 일반화되었다. 

 


현대식 화장실의 정착


1847년 영국 정부는 런던에 대형 하수도 시설이 완성되자 시민들에게 모든 분뇨를 하수시설에 방류해야 한다는 법령을 발표하면서 현대식 화장실로 정착되는 계기가 되었고, 오늘날의 것과 거의 흡사한 가정용 화장실은 1852년 미국의 바논산(山) 위의 호텔화장실이 최초로 알려졌다.


한국의 경우 일제시대에 조선총독부, 특급호텔, 백화점 등에 인공 수세식 변기가 보급되기 시작하였고 해방과 더불어 미군이 주둔하게 되면서 본격화하여, 일반화된 것은 경제 개발로 GNP가 상승하던 70년대로 음식점과 유흥업소등 접객업소에 수세식 화장실의 설치를 허가 조건으로 한 것은 1977년부터 였다. 

 

 

비데


화장실의 왕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루이 14세 때... 뒷물을 하는 장치도 널리 사용되었다.


'비데' 라는 이름으로 불리 우는 이것은 원래 여성들이 섹스 전후에 국부(局部)를 세정(洗淨)하는 장치였다.

 17세기의 어떤 문헌에서 '야전시 장교용 휴대 뒷물 장치' 라는 것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발견되는 것을 보면 비데는 여성의 전유물(專有物)만은 아니었던 듯하다.

일설에 따르면 당시 프랑스에서는 종교적으로 금기시되던 목욕보다는 샤워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벽에 고정되어 있는 샤워기로는 성기(性器)나 항문(肛門) 근처를 닦을 수 없어서 남녀를 불문하고 비데를 사용했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비데의 사용은 당시의 사고(思考)치고는 퍽 위생적이었던 것이 분명하지만 많은 오해의 소지를 갖고 있었다.

배설 행위와 성 행위가 같은 기관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서인지 종종 배설(排泄)과 외설(猥褻)이 혼동되고는 하였던 것이다.

비데를 사용하던 당시의 귀부인들은 음란한 성행위를 즐기는 여자로 오해 받는 경우가 많았다. 일반적으로 화장실을 더럽다고 생각하는 선입관은 이런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 모습이 어때서...


화장실 문화 개선으로 대단한 인기에도 불구하고 주위에 있는 상당수의 사용자들이 "편리한 서양식 좌변기보다 동양식 변기 사용을 선호하고 있다" 는 소리를 듣고 의문을 갖게 된다.

대부분 위생상의 이유로, 정도가 심한 경우는 하이힐을 신고 좌변기에 올라가서 일을 보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하는데 청결한 관리와 내 집처럼 아끼는 의식변화가 선행되어야 하겠지만 사용자들의 선호도 조사가 필요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