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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서/화장실 이야기

화장실은 패션의 어머니

우리들의 현재 패션은 말할 것 없이 서양의 것이다.
이 서양 패션의 대부분이 화장실 사정이 좋지 않아 생겨났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 하이힐
여성의 섹시한 매력을 더해 주는 하이힐이 등장한 것은 17세기 초엽이었다. 당시 서양의 도시들은 사람들의 배설물이 넘쳐흐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비라도 내릴라치면 도로 전체가 오물 진창이 되기 일쑤였다. 길을 다니다 보면, 오물을 밟는 일은 예사이고 심한 경우 오물 웅덩이에 빠지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아무리 아름답게 차려 입은 여성이라도 외출했을 때 드레스가 오물로 엉망진창이 되는 일이 다반사, 더군다나 당시의 여성복장은 길바닥을 쓸고 다니는 스타일이었으니 설상가상이었다. 이 문제의 해결책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하이힐이다. 스커트 자락을 길바닥의 오물로 더럽히지 않기 위해 굽이 높은 힐을 만들어 신게 된 것이다. 당시의 하이힐은 지금의 감각적인 것과는 무척 다른 형상을 하고 있었다. 구두 앞뒤 축을 모두 높이려고 기다란 나무를 덧붙힌 단순하고 원시적인 것을 상상하면 될 것이다.
17세기 프랑스에서는 높이 60cm의 힐까지도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이 정동 높이의 하이힐을 신은 모습은 죽마를 연상시키기 십상이며, 어쩔 수 없이 어기적거리며 걷는 수밖에는 없었다. 이 모습이 섹스 어필 하다고 해서 관심을 끌자, 점차 하이힐 자체의 디자인이 개선되었다. 그 결과 얼마 후에는 옷을 오물로 더럽히지 않으려는 본래의 의도는 사라지고, 하이힐의 형태와 여성이 섹시한 자세를 취하도록 만드는 기능만이 남게 된 것이다.


* 매너에 담긴 뜻
영국 신사들은 숙녀와 함께 갈 때 언제나 여성을 도로의 안쪽으로 걷게 한다. 이른바 매너라는 것인데, 남성은 도로의 한복판으로 걷는 것이 좋은 매너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실은 이것 역시 화장실 사정이 좋지 않은 데서 생긴 풍습인 것이다.
영국에서는 18세기 말까지 실내에 비치한 변기에 볼일을 보고 그렇게 모인 오물을 2층 창문 밖으로 그냥 쏟아 버렸다. 당시의 집들은 2층이 보도 쪽으로 돌출되어 있었기 때문에, 보도 안쪽은 자연스레 2층 발코니의 처마 밑이 되는 셈이었다. 그래서 길 안쪽으로 다니면 오물을 뒤집어쓸 염려가 없었던 것이다. 그대신 보도의 바깥 쪽, 즉 보도 가운데 쪽으로 다니는 사람은 그 오물을 모조리 뒤집어쓸 각오를 해야 했다.
이런 사정으로 신사들은 오물을 뒤집어쓰기 쉬운 보도의 바깥쪽으로 숙녀는 안전한 안쪽으로 다니는 매너가 생겨나게 되었던 것이다. 스릴 있고 위험한 상태로 통행해야 하는 신사 쪽도 물론 완전히 무방비 상태는 아니었다. 오물을 뒤집어쓰지 않기 위한 방책으  로 외투를 고안해 내어 사용했던 것이다.


* 외투
2층 창에서 오물을 그대로 버리는 영국의 생활상을 본 일본의 한 학자는 그 광경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길을 다니는 사람들은 머리에 양동이를 쓰고, 옷을 더럽히지 않기 위하여 폭이 넓고 긴 외투를 입고 다닙니다」예복, 신사복의 전형으로 마구 떨어지는 오물로부터 옷을 보호하려고 생겨난 것이다. 결국 서양의 패션은 당시의 좋지 않은 화장실 사정에 비해, 오물이나 배설물 따위를 처리하기 위한 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