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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갤러리/화장실 낙서

유서로 남긴 낙서

19세기 후반 베티라고 하는 오스트리아의 한 여성은 빈에서 유료 화장실을 관리하는 일을 했다고 한다.
그녀는 대단한 미모(美貌)의 소유자였는데 원래의 직업은 모델이었다. 모델 대신 화장실 관리직을 택했다니 지금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어쨌거나 그녀의 이름은 역대 화장실사의 한 귀퉁이를 장식하는 이름이 되었다.

이 여자가 찬란한 화장실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된 것은 화장실 관리인으로 일하면서 그곳 화장실에 난무했던 낙서를 기록하여 출판했기 때문이었다. 그 책의 제목은 <나의 인생, 나의 의견, 그리고 나의 일>이라는 것이었다.

그녀 덕분에 우리는 약 100년 전 빈의 유료 화장실에 있었던 천태만상(天胎萬象)과 당시의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디에 주된 관심을 쏟아부으며 살았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녀의 책에서는 기발하고도 철학적인 내용의 낙서가 많이 발견된다.


부엌에서 아무리 일품의 요리를 만들어 낸다 하더라도 화장실에서는 지독한 냄새를 낼 뿐이다.
요리사의 요리 실력과 대변의 냄새는 비례한다.


실로 의미심장한 낙서가 아닐 수 없다. 외설과 함께 낙서의 가장 오래된 주제인 정치도 빠질 수는 없다.


민주 사회당원이건 독일 국민당원이건 이곳은 유세장(遊說場)이 아니다.
여기에서는 항문을 열고 입은 다물어라.


화장실에서는 누구나 정치 중립적이 되어야 한다는 이 낙서도 그냥 웃어 넘기기에는 뭔가 아쉬운, 뼈가 들어 있는 말이다. 화장실에서 자살을 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었는데 개중에는 유서 대신 벽에 낙서를 남긴 경우도 있다. 어차피 화장실 낙서이기는 하지만 유서의 내용은 사뭇 비장하다.


나는 더욱 좋은 세상으로 간다. 그곳에서는 모두 즐겁게 지낼 것이며, 맛있는 음식도 산더미처럼 쌓여 있을것이다. 나는 일생을 굶주리며 살았다. 저승이 먹고 사는데 구애를 받지 않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또 화장실에 갈 필요가 없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