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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서/화장실 뉴스

화장실 문화운동

300여년 전 유럽의 도시들에는 으레 ‘뒷간’으로 사용한 거리가 있었다고 한다.이들 거리는 비만 내리면 오물로 엉망진창이 돼 가축이나 사람이 빠져 죽는 일도 흔했다. 19세기 중엽까지만 해도 이처럼 유럽에서는 누구나 거리에서 ‘뒷일’을 봤기 때문에 각 도시는 거대한 화장실이란 인식이 퍼져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의 유럽을 생각하면 믿기지 않는 사실이다.

17세기말에 지어진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에도 ‘호사의 극치’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화장실이 없었다. 5000여명이 살았다는 이 궁전에서는 매일이다시피 밤마다 호화 무도회가 열렸지만 왕에게만 특별히 용변을 처리할 배려가 있었을 뿐이다.다른 사람들은 휴대용 변기를 준비했거나 건물 한 구석의 벽과 바닥,정원의 풀과 숲에다 적당히 방분·방뇨를 했다고 전해진다. 루이 14세가 루브르 궁전에서 베르사유 궁전으로 거처를 옮긴 것은 오물이 너무 많이 쌓여 악취를 피하기 위해서였다는 기록도 있는 걸 보면 모든 궁전이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같은 잣대로 수백년 전의 유럽과 비교하는 건 무리지만 우리나라 화장실,특히 공중화장실의 경우 지금도 썩 자랑스럽게 어디 내놓을 만한 형편이 못된다. 화장실 숫자와 시설도 그렇거니와 사용자들의 의식도 아직은 한참 멀었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요즘 지하철역과 공원 등의 비교적 시설이 잘 갖춰진 화장실에는 이런 표어가 나붙어 있다.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아직 우리 사회에는 아름다운 사람이 별로 없다는 얘기가 된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깨끗하게 사용해 남을 배려하려는 마음씨는 여전히 찾아보기 어렵다.야외의 간이화장실은 차마 어떻다고 언급하기조차 민망하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우리나라에서 겪는 불편사항 가운데 ‘불결한 화장실’이 교통,의사소통 문제에 이어 세번째로 꼽히는 것은 바로 우리 공중화장실의 현주소다.

‘뒷간과 처가는 멀수록 좋다’는 속담은 뒤집어 말해야 더 맞는 세상이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화장실은 한 가정 혹은 집단의 문화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로 통한다. 최근들어 한국화장실문화협의회와 화장실문화시민연대 등 몇몇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화장실 문화를 확 바꿔보자는 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는 것은 여간 반갑고 고마운 일이 아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아름다운 화장실’ 만들기에 발벗고 나선 것도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가능만 하다면 화장과 독서,사색에 음악감상까지도 할 수 있는 생활공간이자 휴식공간으로 화장실을 짓고 가꾸는 것이 우리 국민 모두의 목표가 돼야 한다.공중화장실을 많이 만들고 잘 관리하는 것은 물론 당국의 몫이다.더 중요한 것은 사용하는 사람들이 ‘화장실에 들어갈 때’의 마음으로 깨끗하게 쓰고 아끼는 양심이다.